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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인물탐구

야노 시호, ‘악마’ 추성훈을 구제한 평강공주

이젠 한국인에게 매우 살갑게 느껴지는 일본인 야노 시호(矢野志保ㆍ38). 당초 격투기 선수 추성훈(38ㆍ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의 부인이자 사랑이의 어머니로 국내에 소개된 그가 어느덧 독자적인 인지도를 쌓아가며 ‘남편의 나라였던’ 한국에서 성공적인 연예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 출연 중인 KBS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보여주는 옷차림, 먹는 것, 표정변화, 이야기 등 일거수 일투족은 자잘한 가십거리로 재탄생해 온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추성훈과 딸 사랑이가 CF에서 따로, 또 같이 종횡무진하는 것처럼, 야노 시호 역시 조만간 국내 CF에 단독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현재의 이런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추성훈 덕분에 추성훈의 고국에서 반짝 스타로 떴다.” 그러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정반대로 “야노 시호가 추성훈을 악마에서 스타로 끌어올렸다”고 해야 진상에 근접한 소개다. 야노 시호는 어떤 면에서는 추성훈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일종의 ‘평강공주’ 노릇을 했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다. 결혼 전 바닥까지 떨어졌던 추성훈의 인생, 그리고 결혼 이래 지금까지 만 5년간 급반전된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렇다.

 

 

▶인생 가장 밑바닥 무저갱까지 내려간 ‘사탄’ 추성훈=추성훈은 유도 선수 시절부터 굴곡진 삶이었다. 일본에선 실력이 좋아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대표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고국 한국에선 편파판정과 차별을 겪었다. 그는 국적을 일본으로 바꾼 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 나가 금메달을 땄다. 국내 한 언론은 ‘조국을 메쳤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고국에서 미움을 사며 잊혀졌다. 추성훈은 2년 뒤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일본대표 출전권을 놓친 뒤 은퇴, 격투기 선수로서 그해 12월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출전하면서 다시 대중 앞에 등장했다.

추성훈은 데뷔전 승리 후 2전째 정상급 K-1 파이터 제롬 르 바네에게 패배한 뒤로 내리 10연승을 달리며 잘나갔다. 하지만 데뷔 꼭 2년째인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일본 영웅 사쿠라바 카즈시를 상대로 1라운드 TKO승을 거뒀으나 경기 전 미끄러운 보습크림을 몸에 바른 행위가 발각된 것이다. 경기 도중 사쿠라바는 처절하게 난타당하는 와중에 ”스톱! 스톱! 레퍼리! 슥고이 스베루요!(무지 미끄러워)”라고 선수 권한도 아닌 경기 일시중지 사인까지 내면서 수 차례 항의했었다. K-1 당시 주최사 FEG는 이를 중대한 반칙으로 간주, 이 경기를 무효경기 처리하고 추성훈에게는 무기출장정지 처분을 내렸다. 성난 일본의 팬들은 추성훈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영구퇴출을 요구하는 집단적인 움직임까지 보였다. 현지 언론은 그를 ‘마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항거불능이었다.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자숙하던 그에게 재기의 기회는 다행히도 빨리 찾아왔다. 2007년 10월 K-1 종합격투기 히어로즈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기로 결정된 것이다. 흥행카드가 필요했던 K-1은 추성훈의 징계처분을 해제한다. 추성훈은 또 한명의 ‘하이브리드 스타’인 캐나다 국적의 한국 혼혈 데니스 강을 KO로 꺾는다. 애꿎게 희생양이 된 데니스의 ‘보혈’로 그의 죄가 사해질 듯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에선 아니었다. 2007년 12월의 야렌노카 대회에서 일본인 파이터 미사키 카즈오에게 레프트 훅을 허용해 쓰러진 뒤 다시 일어서다 라이트 사커킥을 안면에 맞고 침몰, KO패 한다. 미사키는 링을 내려가려는 그를 붙들어 세운 뒤 “너는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의 꿈을 짓밟았다. 앞으로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싸워주기 바란다”며 훈계질을 했다. 수많은 관중과 TV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행해진 인신공격이었다. 그러는동안 그의 부러진 코의 피부에서는 계속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듬해 1월 미사키의 사커킥이 반칙으로 판명돼 무효경기처리 돼 패전기록은 지워졌지만 ‘공개처형’을 당한 마음의 상처는 되돌릴 수 없었다. 2008년 2월 K-1 드림의 홍보영상에선 그를 ‘아키야마 사탄 요시히로’로 소개했다. 정작 경기는 부상부위 골절이 재발하며 출전하지도 못 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2009년 1월 야노 시호와 결혼, 인생의 대반전이 시작되다=2009년 2월 추성훈이 UFC와 6개 경기 출전 계약을 맺었다는 낭보가 전해진다. 이미 프라이드는 사라지고 K-1도 경영위기로 흔들리며 일본에서 미국 UFC로 격투기 시프트가 이동한 때였다. 그리고 3월, 야노 시호와 그해 1월 입적(일종의 혼인신고)한 사실을 발표한다. 그해 7월 UFC 데뷔전인 UFC 100에서 강자 앨런 벨처를 판정으로 꺾고 승리한다. 당 대회 가장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10만 달러의 ‘파이트오브더나이트‘ 보너스까지 챙겼다. 두 달 뒤엔 자신의 체육관을 오픈했다. 한국 팬들도 한때 잊혀졌던 그에게 다시 관심을 쏟았다. 한국 매스컴과 광고계가 그를 주목하니 입지가 급상승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꿈같은 인생 대반전이다. 야노 시호와 결혼 후 UFC 계약이 성사되고 데뷔전도 승리했다. 그리고 한국 내 인기도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다. 방송 출연과 CF 계약이 줄을 이었다. 이러니 야노 시호가 복덩이인 셈이다. 그 뒤 4연패를 했지만 그 중 3차례는 ‘파이트오브더나이트’를 수상하며 명예도 지켰고, 금전도 얻었다. 추성훈은 올 9월 2년7개월만의 복귀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재계약도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더이상 그를 ‘사탄’으로 표현하는 언론매체는 없다. 대신 ‘섹시’하다는 뜻을 담은 ‘섹시야마’가 공식 별명으로 굳어졌다.

야노 시호는 이런 대반전을 예상하고 그와 결혼한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추성훈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그와 함께했다. 둘의 교제 관련 루머는 2007년부터 돌았다.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경계인’이던 추성훈을, 더욱이 일본 영웅을 상대로 반칙을 저질러 사회인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맹비난을 받던 시기에 꿋꿋이 만나며 2년간 애정을 키워갔다. 야노 시호는 ‘사탄‘ 추성훈을 그렇게 가슴으로 품었다.

 

 

 

▶야노 시호, 추성훈과 비교할 수 없던 슈퍼스타=추성훈의 모친 유은화 씨는 TV 인터뷰에서 “그 정도의 사람이 왜 우리 애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야노 시호의 스타로서의 지위가 추성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야노 시호는 일본에서 TV와 잡지 등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하던 S급 패션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미혼 시절의 변정수 만큼의 인기를 누렸다. 변정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그녀는 고교 진학 직후 그의 길고 곧은 팔다리를 자랑스러워하던 모친의 권유로 모델을 시작한다. 2000년 초대형 출판사인 슈에이샤의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광고계의 블루칩이 된다. 2001년 일본항공(JAL) 2002년 J폰(현 소프트뱅크모바일), 2003년 네스카페, 2004년 카시오와 한국 게임회사 넥슨코리아의 모회사 넥슨, 2005년 아디다스와 와코루, 2006년 윌컴, 2007년 화장품 카오의 CF와 지면 모델로 활동한다. 일본에서도 맥주 광고와 통신사 광고는 주로 초일류 모델이 섭외되는데, 그녀 역시 삿포로 등 맥주 CF와 여러 통신사 CF를 찍었다. 패션잡지 커버모델로는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했다.

재산으로 따지면 추성훈은 훨씬 더 아래다. 그동안 야노 시호가 광고로만 벌어들인 수익만도 최소 100억원대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복싱에선 매니 파퀴아오와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한 경기에 수천만 달러를 받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격투기에선 UFC에서 역대 10명 안팎의 초인기 선수만 모을 수 있었을 수준이다. 야노 시호가 추성훈의 재산, 또는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내다보고 결혼했을 리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야노의 내조는 전업주부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추성훈의 보양식을 손수 정성스레 준비하는가 하면, 추성훈의 고통스런 훈련과정과 경기를 지켜보며 펑펑 눈물을 흘린다. “남편의 의사를 존중한다”며 격렬한 경기로 만신창이가 돼 귀가할 추성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감내하겠다고 결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이의 동생을 만들어주자며 자식을 한명 더 두고 싶어하는 것도 그녀다. 예쁜데다 마음씨까지 곱다. 추성훈은 진정 장가를 잘 갔다.

 

 

 


▶야노 시호 아닌 아키야마 시호, 혐한ㆍ안티와 마주하다=야노 시호가 결혼 후 일본 방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라 ‘아키야마 시호’가 된 순간, 추성훈이 안고 가던 혐한 세력과 안티 팬들의 또 다른 표적이 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추성훈에 대한 안티 분위기 자체는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다곤 하지만 일본 내 극우 혐한 세력은 인터넷이란 가상공간과 극우 정치인들의 서포트를 자양분으로 세력을 키우며 추성훈을 씹어돌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야노 시호가 추성훈과 함께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고정출연하자 드디어 그녀에게도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초 야노 시호의 소속사도 이런 점을 우려해 잡지 촬영이나 패션 분야 활동을 주로 하고 방송 출연은 미뤄왔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투채널(2Ch) 등 일본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일본에 살 필요도 없겠지. ‘누루누루 일가(유성크림을 몸에 바르는 반칙을 빗대 미끌미끌하다고 비아냥댄 것)는 한국으로 돌아가라”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겠네” “조국 일본을 버리고, 반일국가에서 활동하는 것이냐” “일본에서 안 먹히니까. 유통기한 지났다면 한국으로 가라”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욕설과 비난이 올라온다.(일본 웹매거진 닛칸사이조 2014년 7월31일자 참조)

일본 내 혐한기류가 기세를 꺾기 전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 정치권이 먼저 반성하고 개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추성훈 일가는 물론, 재일교포와 한국인을 향한 몹쓸 반감과 적개심은 쉬이 사그러들기 어렵다. 당연히 어느 일개인의 노력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추성훈 일가는 ‘평강공주’의 내조로 흔들림 없이 참아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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